도시와 에너지 그리고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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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교수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

인류 문명의 역사는 도시 진화의 역사입니다. 인류는 도시와 함께 발전해 왔고, 지금도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의 변화와 우리 삶의 변화에 있어 배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배터리가 우리 삶과 공간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배터리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도시는 생물이다

사람을 연결하는 도시

보통의 개인용 컴퓨터(이하 PC)는 슈퍼컴퓨터와 비교했을 때 연산 능력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PC도 병렬로 많이 연결하게 되면 연산 능력이 슈퍼컴퓨터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외계인 생명체를 탐사하는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젝트에서는 전 세계의 자원봉사자들로부터 PC의 남는 컴퓨팅 리소스들을 제공받아 병렬로 연결하여 네트워크를 구성했는데, 이 네트워크가 슈퍼컴퓨터의 역할을 하여 신호를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SETI 연구소가 수집된 자료 분석을 위해 일반 대중의 컴퓨터를 활용한 '세티앳홈(SETI@Home)' 관련 기사 헤드라인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하나하나의 머리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죠. 그런데 사람들의 뇌를 병렬로 연결하면 집단 지성이 되어 커집니다. 사람의 뇌를 케이블로 연결할 수는 없겠죠. 대신에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연결이 됩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이 하나로 섞이면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언어를 통한 연결은 기본적으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하고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게 해준 장치가 바로 도시입니다.

생명체와 닮은 도시의 진화 패턴

인류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점점 도시는 규모가 커지게 됩니다. 도시의 진화 패턴을 보면 생명체의 진화 패턴과 상당히 비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체가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진화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단세포의 경우 세포막을 통해서 산소를 공급받는데, 세포 분열이 되어 다세포가 될 경우 여러 세포에 둘러싸인 안쪽의 세포는 산소와 접하는 면이 없어 산소 공급이 어려워 죽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명체는 순환계가 발달하는 쪽으로 진화합니다. 우리가 혈액을 통해 온몸의 세포에 산소를 공급받는 것처럼 말이죠.

도시의 발전도 비슷합니다. 맨 처음에는 움집들이 몇 개 있는 정도의 촌락에서 시작합니다. 세포 몇 개 안 되는 것과 같은 상태죠. 이것이 규모가 점점 커져서 수천 명 정도의 도시가 만들어지면 순환계가 발달을 해야 됩니다. 첫 번째 순환계로 상수도 시스템이 개발되고, 조금 더 발달하면 하수도 시스템이 개발되는 거죠. 예를 들어 로마가 만든 애퀴덕트 같은 상수도 시스템은 깨끗한 피를 공급하는 동맥 네트워크에 비유할 수가 있고, 더러운 물을 회수하는 파리의 하수도 시스템은 더러운 피를 회수하는 정맥 네트워크에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도시 진화의 한계

도시의 에너지 체계를 보면, 전구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전력망이 중요해졌고 이제는 도시 전체에 전력망이 깔려 어떤 전자 제품이든 플러그만 꽂으면 전기를 공급받아서 쓸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의 문제는 장소에 종속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TV를 보기 위해 TV의 전원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으면, 이 전선의 길이 바깥으로는 이동을 못하는 한계점이 생기는 것이죠. 아직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기기들이 그러한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Energy Everywhere

전기 에너지에 자유를 준 배터리

도시의 에너지 시스템을 과거부터 살펴보면 초기에는 동물의 힘을 이용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석탄 에너지를 쓰기 시작했고, 증기기관을 발명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전환해 활용하는 시스템을 마련했죠. 그 후에는 석유를 활용한 내연기관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동차는 한번 기름을 넣으면 500~600km 정도의 거리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배터리가 발전하면서는 전기 에너지를 쓰는 기기들이 플러그를 뽑고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BoT 개념의 등장

15년쯤 전에 ‘유비쿼터스 시티(Ubiquitous City)’라는 말이 유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라는 용어를 한창 여기저기서 떠들던 시기였죠. IoT에 대해 학자들은 한마디로 ‘Computer Everywhere’라고 정의를 합니다. 이것은 에디슨이 처음 전구를 발명했을 때 캐치프레이즈가 ‘Light Everywhere’였던 것과 관련이 있는데, 당시에는 태양 등에만 의지하던 빛을 전구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만들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이 최근에는 배터리로 넘어와 ‘BoT(Battery of Things)’, 그리고 ‘Battery Everywhere’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배터리가 모든 곳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죠.

인간이 만들고 있는 전기 생태계

지구는 엄청나게 많은 생명체들이 얽혀 하나의 생태계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산소나 질소, 탄소와 같은 유기체 에너지의 플로우가 만들어진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이와 유사한 인간만의 생태계를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기계를 만드는 데, 여기에도 에너지의 흐름이 있습니다. 석탄 에너지, 석유 에너지, 전기 에너지와 같은 에너지원이 포함되는 에너지의 플로우가 있고, 이를 활용해 생명체처럼 에너지의 흐름이 있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리고 그 기계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게 됩니다.

전기 생태계의 세포 ‘배터리’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배터리

모든 생명체의 세포 안에는 미토콘드리아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ATP(아데노신삼인산, 생명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유기 화합물)라고 하는 에너지를 생성하는 일종의 발전소 역할을 합니다.

전기 에너지로 움직이는 기계 생태계에서 이러한 미토콘드리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배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전소 역할은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충전한 에너지를 삽입된 기계 안에서 미토콘드리아가 ATP를 생성해 에너지를 공급하듯이 충전된 에너지를 기계에 공급하기 때문이죠.

배터리가 주도하는 변화

옛날에 워크맨이 등장했을 때 굉장히 놀라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라디오나 전축을 통해서만 들었어야 했는데, 어느 날 워크맨이라는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건전지만 넣으면 아무 데나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죠. 내가 어떤 기계의 편의를 누리려면 그것이 전원이 연결된 장소에서만 국한되어 누릴 수 있었던 것이 배터리로 인해 자유롭게 다니면서 누릴 수 있게 된 겁니다.

8-도시와 에너지 그리고 배터리

대표적인 사례가 스마트폰입니다. 배터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일종의 컴퓨터를 들고 다니면서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도 언제 어디서든 연결이 가능해진 것이죠. 최근에는 배터리가 탑재된 TV도 등장해 내가 원하는 장소에 끌고 다니면서 볼 수 있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모바일 테크놀로지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장소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전기 자동차의 경우에도 앞으로 인프라가 더 구축될수록 내연기관 자동차 이상의 자유로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도시의 형태도 또 새롭게 바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LG전자에서 선보인 이동형 무선 TV '스탠바이미'

우리 삶의 변화에 있어서 배터리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배터리를 얼마나 더 작게 만들 수 있느냐, 또 얼마나 더 성능 좋게,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변화의 양상은 조금 달라질 수 있겠죠. 이러한 변화는 지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나아가 우주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선이든 다른 행성이든 우리는 기계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그것은 배터리가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즉, 우리의 공간적 확장을 위해서는 배터리가 꼭 필요할 것이며 앞으로 그 활용성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소견이며 LG에너지솔루션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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