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차이나 2026이 선언한 ‘지능화’의 시대
4월 24일부터 5월 3일까지 열흘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2026 베이징 국제 모터쇼(오토차이나 2026)’는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자리였습니다. 전 세계 완성차·부품사들이 대거 참여해 총 1,451대의 차량이 전시되었으며, 이 중 최초로 공개된 월드 프리미어 모델만 181대에 달해 세계 최대 자동차 전시회의 위상을 입증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진 이번 전시가 주목받는 이유는 규모뿐만 아니라, 자동차 산업 게임의 룰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업계의 핵심 화두였던 전동화는 이제 기본 전제가 됐고, 산업의 축은 AI·소프트웨어 기반의 ‘지능화’ 경쟁으로 완전히 이동했습니다.
전시장 곳곳에는 로보택시, 플라잉카(eVTOL), 휴머노이드 로봇, AI 콘셉트카가 한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모빌리티 산업이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서 주행거리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정교한 AI 시스템과 데이터 생태계의 구축·운영이 핵심이 되는 ‘기술 생태계 장’으로 탈바꿈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글로벌 OEM과 중국 기업 간의 관계 변화였습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중국 현지 AI 및 자율주행 기술을 전면 채택한 신차를 대거 공개했고, 중국 OEM들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AI 모빌리티 생태계 전략을 선언했습니다. 두 흐름이 하나의 전시장 안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의 주도권 지형이 변화하고 있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제부터 글로벌 기술 선도 기업들이 어떻게 모빌리티 생태계 혁신을 현실화하고 있는지, 오토차이나 2026에서 확인한 변화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자동차 제조에서 생태계 설계까지: AI 빅테크로 진화하는 중국 OEM
이번 오토차이나 2026은 중국 OEM들이 전통적인 완성차 제조사의 정체성을 탈피해, AI 기반 기술 기업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중국 OEM들은 하드웨어 생산에만 그치지 않고, AI·자율주행·차량 OS·로봇·항공 모빌리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거대한 모빌리티 생태계를 설계하는 플랫폼 사업자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동 수단의 가치를 확장하며 가치 사슬 전반을 재편하고 있는 현지 기업들의 다각적인 미래 전략을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 지리자동차그룹, ‘원 지리(One Geely)’ 전략으로 AI 빅테크로 전환

지리자동차그룹은 이번 전시에서 개별 신차를 소개하는 대신, 기술 생태계 전체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중국 최초 로보택시 전용 프로토타입 ‘EVA 캡(EVA Cab)’이었습니다. 해당 차량에는 세계 최초 2160라인 라이다와 양자급 보안 기반의 EEA 4.0 아키텍처가 적용됐으며, 자율주행 안정성과 데이터 보안 경쟁력을 동시에 강조했습니다. 또한 휴머노이드 로봇, 전고체 배터리, AI 디지털 섀시, 900V 고전압 하이브리드 플랫폼까지 함께 공개하며 단순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지능형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 샤오펑, L3을 건너뛰고 L4로 – 하늘까지 넘보는 풀스택 기술 역량

샤오펑은 6륜 대형 전기 SUV 플랫폼 위에 필요시 분리·이착륙이 가능한 플라잉카(eVTOL) 실물을 공개하며 저고도 항공 모빌리티 시장 선점 의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또한, 자율주행 부문에서도 기술 리더십을 가시화했는데요. 올해 3월 공개한 차세대 지능형 주행 시스템 VLA 2.0을 기반으로 과도기적인 L3 단계를 과감히 생략하고 L2에서 L4 수준의 고도화된 자율주행으로 직행하겠다는 공격적인 로드맵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처럼 지상과 공중을 아우르는 모빌리티 포트폴리오는 샤오펑이 전기차 기업에서 풀 스택(Full-stack) 모빌리티 기술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 샤오미 EV, 스마트폰 생태계를 차량으로 확장하는 ‘AI 스마트 디바이스

샤오미는 자동차를 스마트폰·가전·AI 플랫폼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AI 스마트 디바이스’로 재정의했습니다. 차량 내 AI가 식당 예약이나 커피 주문과 같은 일상 작업을 수행하고 운전자의 스트레스·피로 상태를 분석해 조명·음악·실내 환경까지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을 소개했는데요. 특히 생체 센서를 기반으로 심박수와 신체 상태 변화를 실시간 감지해 주행을 보조하는 콘셉트카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차량 AI가 편의 기능을 확장하여 주행 안전성을 향상시키고 개인화된 주행 경험의 고도화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제시했습니다.
현지화 체제 전환과 핵심 기술 협업, 중국 기술을 품은 글로벌 OEM
한편 이번 오토차이나 2026이 보여준 가장 큰 구조적 변화 중 하나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자율주행 판단 로직·차량 운영체제(OS)·전기 구동 시스템 등 차량의 ‘두뇌’에 해당하는 핵심 영역에서 중국 기업의 솔루션을 적극 채택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과거 생산 및 유통 네트워크 공유 수준에 머물렀던 현지 파트너십이, 이제는 차량의 본질적인 기술 경쟁력을 함께 설계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 현대차의 중국 현지 밀착형 협력

현대차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첫 전략 양산형 전기차 ‘아이오닉 V’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아이오닉 V는 현지 파트너사 베이징자동차와 공동 개발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중국 자율주행 기업 모멘타의 레벨2 ADAS 등을 탑재해 중국 시장을 정조준 한 모델입니다. 이는 과거의 현지 조립·생산 방식 체제에서 벗어나, 현지 톱티어 기술 생태계 속으로 직접 뛰어들며 중국 자율주행 시장을 공략하려는 고도화된 현지화 전략으로 해석됩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V를 시작으로 아이오닉 E, 중형 SUV, MPV,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 등으로 현지의 특화 기술 적용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면서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낼 계획입니다.
- 토요타의 중국 현지 기술 파트너십 심화

토요타는 2025년 6월 GAC-토요타 간 ‘파트너십 2.0’ 체결을 계기로 중국 현지 기술 공급사와의 협력을 본격 확대하고 있습니다. GAC와의 합작법인을 통해 개발한 중국 전용 전기 세단 bZ7에는 화웨이의 전기 구동 시스템 ‘DriveONE’과 하모니OS 기반 스마트 콕핏, 모멘타의 ADAS가 전면 적용됐습니다. 차량의 핵심 사용자 경험과 AI 기반 주행 시스템 전반을 중국 기술 생태계와 함께 설계하는 수준으로 협력 구조가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 폭스바겐의 ‘In China, For China’ 전략

폭스바겐은 ‘In China, For China’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며 중국 현지 기술 생태계와의 전방위 협업을 구체화했습니다. 폭스바겐은 샤오펑과 공동 개발한 순수 전기 세단 ‘ID. UNYX 09’를 비롯해, 중국 시장을 위해 독자 개발한 전자 아키텍처 ‘CEA’와 CARIAD China·호라이즌 로보틱스의 합작사 카리아즌(CARIZON)의 ADAS를 적용한 ‘ID. AURA T6’를 공개했습니다. 또한 화웨이 ADS 기술을 적용한 ‘ID. UNYX 06·07’도 함께 전시하며 중국 AI·자율주행 생태계와의 협업 범위를 적극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중국 소프트웨어 기술의 글로벌 확산, 전략적 제휴를 통한 산업 표준 재편
글로벌 OEM의 중국 기업 솔루션 채택과 함께 중국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AI 소프트웨어·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차량 OS 등을 제공하는 중국 기업들이 주요 글로벌 OEM의 기술 파트너로 입지를 넓혀가고 추세입니다. 이와 같은 협업은 중국 시장 내 경쟁력 확보를 넘어, 글로벌 AI 모빌리티 경쟁에서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있습니다.
- 화웨이, 모빌리티 OS 생태계 설계자로의 진화와 ‘Tier 0.5’ 전략

화웨이는 차량 OS와 자율주행 플랫폼을 중심으로 타 브랜드와 적극적으로 협업하며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하여 구축한 브랜드 연합체 HIMA(하모니 인텔리전트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제품 기획·자율주행·OS·판매까지 전반을 주도하는 ‘Tier 0.5’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이는 기존 Tier 1 공급사 역할에서 벗어나, 차량의 핵심 소프트웨어 구조와 사용자 경험 전반을 설계하는 플랫폼 사업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화웨이는 HIMA와 첸쿤, 주요 파트너 브랜드를 아우르는 대규모 통합 부스를 운영하며 독자적인 모빌리티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제시했습니다.
- 글로벌 OEM이 동시에 선택한 중국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모멘타의 부상

중국 자율주행 기업 모멘타가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핵심 기술 파트너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이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신형 S클래스에 ‘MB.드라이브 어시스트 프로’를 적용했고, BMW는 중국 전용 iX3에 모멘타 기반 ADAS를 탑재했습니다. 현대차 역시 아이오닉 V에 모멘타 솔루션을 적용했으며, 토요타도 중국 전략형 전기차 bZ7에 모멘타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OEM들이 중국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현지 AI·자율주행 기술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동시에 중국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AI가 만들어낼의 모빌리티의 넥스트 스테이지
오토차이나 2026은 모빌리티 산업의 경쟁 기준이 ‘얼마나 잘 달리느냐’에서 ‘얼마나 잘 연결되고 판단하며 학습하느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완성차 기업이 AI 빅테크로 진화하고, 소프트웨어가 공급망의 새로운 게이트키퍼로 부상하는 지금, 급변하는 시장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보다 확장적이고 지속 가능한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한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완성차 밸류체인 내 각 플레이어들은 이제 분절된 독자 기술을 중심으로 한 경쟁 구도를 탈피해 자율주행 플랫폼·차량 OS와의 호환성, AI 시스템과의 데이터 연동 능력 등 상호 연계된 새로운 산업 생태계 내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구조와 공급 계약 체계 전반을 재정비해야 할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