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터리는 여러 소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리튬이온을 방출하는 양극재, 에너지를 저장하는 음극재, 리튬이온의 통로인 전해질, 그리고 양극과 음극을 구분하는 분리막입니다.
이러한 핵심 소재들이 제 기능을 수행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보조 소재들의 역할도 필요합니다. 그중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전극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주는 요소가 있는데요. 바로 ‘바인더(Binder)’입니다.
*바인더의 기초부터 알고 싶다면? 배터리 용어사전 – 바인더 보러가기
차세대 소재 개발과 함께 주목받는 바인더(Binder)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은 ‘슬러리(Slurry)’라는 혼합물을 집전체에 도포해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슬러리는 활물질과 도전재, 바인더, 용매 등을 일정 비율로 섞어서 만드는데요. 이 중 바인더(Binder)는 활물질과 도전재 입자들이 서로 잘 결합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전기차, ESS(에너지저장장치), IT 기기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고용량·고출력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실리콘, 리튬금속 등 에너지 밀도가 높은 차세대 활물질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들은 부피 팽창, 계면 반응 등으로 인해 전극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상용화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에 따라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소재와 기술도 함께 연구되고 있죠.
이처럼 차세대 활물질의 특성을 뒷받침하려면 바인더의 역할도 훨씬 정교해져야 합니다. 단순한 접착제 기능을 넘어 전극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이온전도성을 높이는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죠.
배터리 성능을 높일 수 있는 바인더의 요건
그렇다면 바인더는 어떤 조건들을 갖춰야 전극 구조를 안정적으로 지탱하고 배터리 성능을 높일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활물질과 도전재 입자들을 고정시킬 수 있는 접착력과 기계적 강도입니다. 충∙방전 과정에서도 입자들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전극 전체 구조의 안정성이 확보되기 때문이죠.
여기에 탄성력도 함께 요구됩니다. 실리콘처럼 충∙방전 중에 부피가 팽창하는 소재의 경우 단순히 접착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반복되는 부피 변화로 인한 응력1을 완화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죠.
이어 중요한 요소는 화학적 안정성입니다. 바인더는 전해질과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전극 내에서 일어나는 산화·환원 반응에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계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열화 반응이나 부식, 가스 발생 등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계면 안정성이 유지되어야 전극 수명 또한 장기적으로 확보될 수 있죠.
아울러 바인더는 전극 내에서 이온과 전자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이온 전도성을 떨어뜨리지 않는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온도 조건에서 일관된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열적 안정성도 필요합니다. 배터리는 다양한 환경에서 활용되기 때문에 고온 환경에서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죠.
용매에 따라 나눠지는 비수계 바인더와 수계 바인더
바인더는 사용하는 용매의 종류에 따라 비수계(유기계) 바인더와 수계 바인더로 나뉩니다. 비수계 바인더는 NMP(N-Menthyl-2-Pyrrolidone, 노말메틸피롤리돈)와 같은 유기 용매에 녹여 사용하는 방식으로 적용되며, 양극 활물질에 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 이유는 양극 활물질이 물에 쉽게 분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수계 바인더는 물을 용매로 활용하며, 음극 제조 공정에서 널리 사용됩니다.

비수계 바인더와 수계 바인더는 입자와 바인더의 결합 구조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요. 비수계 바인더는 입자 사이를 선 형태로 연결하는 ‘선 접촉형’ 구조, 수계 바인더는 입자 간 접점 위주로 결합하는 ‘점 접촉형’ 구조를 형성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전극의 기계적 강도와 성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해 활물질의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에 활물질 비율을 늘리고, 바인더의 함량을 줄일 수 있는 수계 바인더가 좀 더 주목받는 추세입니다. 또한 수계 바인더는 유기 용매를 사용하지 않아 환경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정이 단순해지고 제조 비용도 절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건조 속도를 높일 수 있어서 제조 효율을 확보할 수 있죠. 더불어 전해질과의 친화성이 높고, 전기화학적 안정성 측면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보입니다.

비수계 바인더 – PVDF(Polyvinylidene Fluoride)
비수계 바인더의 대표주자로는 PVDF(Polyvinylidene Fluoride, 폴리비닐리덴 플루오라이드)를 꼽을 수 있습니다. PVDF는 리튬이온배터리 상용화 초기부터 널리 사용된 전통적인 바인더로 주로 NMP(N-Methyl-2-Pyrrolidone) 용매와 함께 사용됩니다. 이 조합은 접착력이 우수하고, 도전재가 잘 분산될 뿐만 아니라 산화·환원 반응에도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PVDF는 분자 내 강한 탄소–불소 결합 구조를 바탕으로 열적·전기화학적 안정성이 우수한데요. 약 5V의 전압이나, 400℃에 가까운 고온에서도 전극의 구조가 깨지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합니다. 또한 선형 고분자 구조 덕분에 결정성이 높으며, 전해질을 흡수하면 최대 30%까지 팽창해 높은 이온 전도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PVDF는 함께 사용하는 NMP 용매는 독성이 강하고 처리 비용이 높은 단점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친환경성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배터리 업계에서는 공정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죠.
비수계 바인더 – PTFE(Polytetrafluoroethylene)
PTFE(Polytetrafluoroethylene,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는 분자 전체가 탄소와 불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불소계 고분자입니다. 탄소–불소의 구조가 강하게 이어져 있어서 우수한 열적·화학적 안정성을 보이며, 높은 기계적 강도도 동시에 갖추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고온, 고압, 고전압 등 극한 환경에서도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PTFE는 차세대 기술 중 하나인 건식 전극 공정에서 핵심 바인더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PTFE가 섬유화(Fibrillation)라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PTFE는 응력을 가하면 입자가 늘어나면서 미세 섬유 형태로 변형되는데요. 이 섬유들이 서로 얽혀 기판 없이도 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덕분에 안정적인 전극 필름을 구현할 수 있어, 건식 전극 공정에 최적화된 소재로 꼽히고 있습니다.
수계 바인더 – CMC(Carboxymethyl Cellulose) + SBR(Styrene-Butadiene Rubber)
CMC(Carboxymethyl Cellulose, 카르복시메틸 셀룰로오스)와 SBR(Styrene-Butadiene Rubber, 스티렌-부타디엔 고무)는 리튬이온배터리 음극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수계 바인더 조합입니다.
CMC는 천연 셀룰로오스를 기반으로 한 선형 고분자 유도체인데요. 점성이 높고 수용성이 뛰어나며, 전극 내부에서 활물질과 단단히 결합해 구조 안정성을 높여줍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충·방전 시 부피 변화가 큰 실리콘 음극에도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죠. 또한 CMC는 실리콘 표면과 화학적으로 잘 결합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계면 안정성을 높이고 전해질 분해 반응을 억제하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아울러 CMC는 수계 슬러리 내에서 활물질의 분산과 상안정성 유지에도 도움을 줍니다.
함께 쓰이는 SBR은 고무계 고분자로 접착력을 높여줍니다. CMC와 조합되면 전극 입자 간 점 접촉형 구조를 형성하며, 기계적 유연성과 마찰 저항성을 높여주는데요. 전극 구조를 더욱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줍니다. 즉, CMC가 구조 안정성을 담당한다면, SBR은 접착력과 유연성을 더해주는 역할은 하는 것입니다. CMC와 SBR, 이 두 바인더의 조합은 일반적으로 흑연 활물질 조성에서 활용되지만, 흑연 활물질과 실리콘 활물질의 조합에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아크릴계 바인더 – PAA(Polyacrylic Acid), PAN(Polyacrylonitrile), PAM(Polyacrylamide)
실리콘과 같은 고용량 음극 활물질은 충∙방전 과정에서 부피 팽창이 발생하는 현상이 있는데요. 이는 전극 구조나 수명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아크릴계 바인더인PAA(Polyacrylic Acid, 폴리아크릴산)와 PAN(Polyacrylonitrile, 폴리아크릴로니트릴), PAM(Polyacrylamide, 폴리아크릴아마이드) 주목받고 있습니다. PAA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PAA와 PAN 또는 PAA와 PAM이 함께 결합하는 코폴리머(Co-polymer)2 형태로 소재 개발이 되고 있는데요. 각각의 장∙단점을 상호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죠.
PAA는 수계 바인더로 카복실기(-COOH)를 가진 아크릴산이 반복 결합해 형성된 아크릴계 고분자입니다. 실리콘 표면에 있는 수산기(-OH)와 카복실기가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바인더가 실리콘 입자에 단단히 부착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극 구조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충∙방전을 반복해도 계면이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또한 전해질 분해 같은 부반응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카복실기끼리 강하게 결합해 경화되면 잘 부서지기 쉽기 때문에 부피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이 있습니다.
또 다른 수계 바인더 중 하나인 PAM은 아마이드기(-CONH₂)를 지닌 아크릴아마이드가 반복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아크릴계 고분자입니다. 아마이드기는 다수의 수소결합을 형성할 수 있어 실리콘 표면의 수산기와 강하게 상호작용하며, 이를 통해 바인더가 실리콘 입자에 견고하게 부착될 수 있습니다. 또 PAM은 유연성이 높아 충·방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리콘의 부피 팽창과 수축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카복실기가 없어 이온과의 접착력이 낮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PAN은 니트릴기(-C≡N)를 가진 아크릴로니트릴로 형성된 아크릴계 고분자로 비수계 바인더에 속해있습니다. 니트릴기는 실리콘 표면의 수산기와 강하게 결합해 활물질 입자들이 단단히 붙어 있도록 돕는데요. 전극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PAN은 낮은 온도에서 전기전도성이 높아 리튬이온 이동이 원활하고, 높은 온도에서는 열에 강해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추고 있죠. 반면 PAN은 물에 대한 용해도가 PAA, PAM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서, 고함량으로 용해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배터리 성능을 높이는 숨은 조력자인 바인더를 살펴봤습니다. 비수계와 수계 바인더의 특징은 물론 최근 바인더에게 요구되는 조건들도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배터리 성능을 높이는 다양한 소재 이야기를 전지전능 전지 이야기에서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