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의 양극과 음극을 만드는 전극 공정은 다양한 원자재를 혼합하여 액상의 슬러리를 제조하는 ‘믹싱 공정’으로 시작됩니다. 슬러리의 균일한 분산은 성능 최적화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배터리의 성능과 품질을 좌우할 수 있는 믹싱 공정의 주요 단계 중 하나이자, 균일한 슬러리를 만드는 ‘선분산 공정’이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전극 제조의 기본 소재, 슬러리의 구성요소
믹싱 공정은 배터리 성능의 핵심이 되는 ‘활물질’에 ‘바인더’, ‘도전재’, ‘용매’ 등 첨가제를 혼합하여, 전지의 기본 소재가 되는 액상 형태의 슬러리를 만드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먼저, 활물질(Active material)은 전극에 화학적으로 반응하여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활성 물질로, 양극 활물질은 배터리 충전 시 음극으로 리튬이온을 제공하고, 음극 활물질은 배터리 방전 시 양극에서 이동해 온 리튬이온을 저장하고 방출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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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인더(Binder)’는 활물질 내 입자들이 고정될 수 있도록 입자와 집전체, 입자 간 접착력을 높여주는 소재입니다. 전해질과의 접촉이나 전극 내 일어나는 산화·환원 반응에도 안정적으로 접착력을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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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재(Conductive additives)’는 활물질 입자 사이를 연결하여 전자의 이동을 촉진하고 전기적 특성을 향상시킵니다. 도전재의 종류로는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카본 블랙과 전도성 흑연, 탄소 나노튜브(CNT), 그래핀 등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탄소 나노튜브 CNT(Carbon Nanotube) 도전재’는 기존의 도전재보다 적은 양으로도 더 우수한 전도성을 제공하여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는 소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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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성능의 미세한 차이를 결정짓는 ‘선분산’
‘선분산 공정’은 믹싱 공정의 세부 단계 중 하나로, 전극의 도전성*을 높이기 위하여 도전재를 균일하게 분산시키는 사전 처리 과정입니다. 일반적으로 도전재, 분산제, 용매를 혼합하는 Pre mixing 단계(사전 믹싱)와 Pre mixing된 용액(선분산액)을 ‘비드(bead)’를 이용하여 추가로 분산시키는 ‘비드밀 공정’으로 이루어지는데요. 이러한 초기 공정을 통해 슬러리의 품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도전성(전도성): Conductivity, 물질이 전기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
이후에는 슬러리 내 바인더를 균일하게 분포시키기 위하여 메인 믹싱 전, 바인더를 용매에 용해시키는 ‘바인더 용해공정’이 진행되며, 도전재 선분산액, 용해된 바인더 및 활물질을 계량 투입한 후 적절한 혼합 속도(rpm), 시간으로 믹싱하는 ‘메인 믹싱’ 단계를 거쳐 슬러리가 완성됩니다.
한편, 이러한 믹싱 공정은 제조사와 공정 기기의 특성에 따라 분체 투입 및 혼합의 세부 순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믹싱 공정에서 ‘온도’ 및 ‘혼합 속도’도 슬러리 특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믹싱 과정에서 온도가 과도하게 상승하면 선분산액이나 슬러리가 겔화(Gelation) 되어 분산성이 약화될 수 있으며, 혼합 속도가 너무 빠르면 과도한 전단력* 가해져 섬세한 활물질 입자가 손상될 수 있죠. 따라서, 제조하고자 하는 배터리의 특성, 제조 규모를 고려하여 믹서의 성능, 주요 공정 매개변수, 적절한 혼합 순서를 신중하게 설계하고,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세심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전단력: 두 물질의 평행한 층 사이에 서로 다른 속도로 미끄러지게 하는 힘
그렇다면, 도전재는 왜 균일하게 분포되어야 할까요?
먼저, 도전재는 일반적으로 쉽게 응집체를 형성하고 용해성과 분산성이 낮은 특성이 있습니다. 특히, 기존 카본 블랙 도전재의 대체제로 주목받고 있는 ‘CNT 도전재’의 경우에는 CNT 간의 강한 반데르발스 인력*이 작용하여 용액 내에서 번들 형태로 뭉쳐져 존재하게 되는데요. 슬러리 내 응집체가 남아 있으면 CA 네트워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전자가 전도되는 경로가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기 저항이 증가하고, 이는 배터리 성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데르발스 인력: 분자 간 또는 분자 내의 부분 간의 인력이나 척력.
*CA(Conductive Additive) 네트워크: 전극 내 도전재가 형성하는 네트워크 구조. 도전재 입자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전기전도도가 향상된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도전재, 분산제, 용매를 혼합해 선분산액을 제조하는 것인데요. 선분산액은 이후 메인 믹싱에서 추가되는 활물질이 잘 분산될 수 있도록 돕고, 코팅 공정에서도 전극의 두께와 밀도가 균일하게 형성되도록 기여합니다. 따라서, 선분산 공정은 전극의 전기전도도를 높이고 배터리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정입니다.
선분산 기술의 주요 방법들
1) 물리적(기계적) 분산: 외부에서 전단력 또는 충격력과 같은 물리적(기계적) 에너지를 가하여 입자 사이의 결합력을 끊고, 분말 입자가 액체 내에서 고르게 분산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기술 난이도가 비교적 낮아, 현재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방법인데요. 그러나 물리적 분쇄는 응집체 크기를 어느 정도 줄일 수 는 있지만, 엉켜있는 입자들을 완전히 풀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비드밀*, 제트밀* 등이 있으며, 초음파의 진동 에너지를 이용해 입자들을 더욱 미세하게 분산시키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드밀(Bead mill): 구형(球形)의 비드를 활용하여 입자를 분쇄하고 분산시키는 기기
*제트밀(Jet mill): 고압의 기체를 사용하여 입자들을 서로 충돌시켜 분쇄하는 방법. 입자들은 기체의 속도에 의해 가속되고, 서로 충돌하며 크기가 줄어든다
2) 화학적 분산: 도전재의 표면을 산으로 처리하거나, 계면활성제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기술적 난이도는 중간 정도에 해당하나, 도전재(특히 CNT)의 표면에 결함이 발생하거나 용액의 점도가 증가하여 전기전도도 등 특성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3) 분산제 이용: 셀룰로오스계 화합물(예: CMC), 비닐계 또는 아크릴계 화합물(예: PVP) 등의 분산제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가장 높은 난이도의 분산 방법으로 평가됩니다. 이 방법은 분산제가 입자 표면에 흡착되어 도전재 입자를 분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데요. 하지만, 분산제의 종류에 따라 슬러리 특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최적의 분산제를 개발하는 데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EV와 ESS(Energy Storage System) 등 중대형 전지 시장이 확대되면서, 전극 내 활물질의 함량도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활물질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소량으로도 높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바인더와 도전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데요. 이를 균일하고 효과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선분산 공정의 최적화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죠. 앞으로도 새로운 분산 기술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지속되면서, 이차전지의 성능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